꽃게가 아니라 곶게였대!친구들 안녕! 오늘의 식재료는 게야. 게는 중국과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어.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가난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해산물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 책에는 고려 백성들이 주로 게ㆍ전복ㆍ왕새우 등의 해산물을 먹었고, 꽃게탕을 별미로 즐겼다고 적혀 있어.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또 다른 게 요리가 게장이야. 간장게장은 한약재를 넣고 끓인 간장에 게를 삭힌 음식이지. 게장 하나면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고 해서 밥도둑이라고 불려. 그런데 말이지, 서해에서 주로 잡히
“아, 그 아름다운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1770년,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시스티나 성당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의 부악장이었던 그는 음악 신동인 아들 모차르트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탈리아로 연주 여행을 왔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곡, 알레그리가 작곡한 를 직접 듣게 된 것이다. *미제레레성경의 시편 51편을 가사로 하는 성가. 신에게 죄를 고백한 후 용서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가사의 첫 소절인 ‘미제레레 메이(저를 불쌍히
‘숭’이라 불렸던 배추오늘은 김치의 재료가 되는 배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배추는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을까? 배추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졌어. 이때의 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상추처럼 잎이 벌어져 있었지. 우리가 알고 있는 속이 꽉 찬 배추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결구배추야. 역사서에 배추가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향약구급방』이 처음이야. 『향약구급방』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약재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모아 놓은 의학책이지. 『향약구급방』에서는 배추를 채소가 아닌 약초로 분류했고 배추는 ‘숭’이라 기록했어.
인류의 오랜 친구, 닭1년에 600억 마리 이상을 소비할 만큼 인류는 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지. 그렇다면 닭은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했을까?닭의 시초는 붉은야생닭으로 성질이 사납고 동작이 재빨랐어. 이 닭은 5000년 전에 동남아시아 지역인 베트남과 미얀마 등지에서 가축화되었어. 가축화된 닭은 야생에서 살 때보다 몸집이 커져 고기의 양도 많고 육질도 부드러워졌어. 닭은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파되었어. 우리나라에 닭이 들어온 것은 2000년 전 즈음으로 추정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의 건국 신화와 신라의 탈해
아주 오래전 옛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샀을까?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이 코너는 이런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해. 그럼 이제부터 고대에서 현대까지 세계사를 이끈 중요한 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인류 최고의 상품 염전(鹽田)에 가 본 친구들이 있니? 염전을 우리말로 소금밭이라고 해. 이곳에 가면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어. 바닷물이 햇빛과 바람을 만나서 수분이 증발하면 짠맛이 나는 흰색 결정체들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소금이야. 소금은 바다에서만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원자 폭탄을 맞아 나라가 쑥대밭이 됐어. 이후 식량난에 허덕이자 닛신 식품의 창업주인 안도 모모후쿠 회장의 고민이 커졌어. 그 무렵 안도 회장은 포장마차를 찾았어. 그런데 포장마차 주인이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을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자 안도 회장의 머리가 번뜩였어. “튀겨질 때 밀가루 속의 수분이 빠져나가는구나.”안도 회장은 곧장 집으로 향했어. 집 마당에 작은 연구실을 만들어 연구에 집중했어. 밀가루 반죽을 튀기면 수분이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 많은 구멍들이 생겼지. 그리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었더니
조선의 고급 식재료였던 밀밀은 기원전 1만 년경에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일대에서 처음 재배됐어. 이후 기원전 100년경에 중국을 거쳐 삼국 시대 즈음에 우리나라로 전래됐지. 우리나라는 쌀과 밀 중에서 무엇을 좋아했을까? 당연히 쌀이야.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밥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지. 밀을 선호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다루기가 쉽지 않아서였어. 밀은 낟알이 쌀이나 보리처럼 단단하지 않고 잘 부서졌어. 대신 낟알을 싸고 있는 겉껍질은 단단했지.고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고려도경』에는 ‘국수는 밀가루값이 매우 비
피사의 사탑 피사 1173~1372와, 기울어진 탑이라니! 곧 쓰러질 것 같아요! 헬렌이 이걸 봤다면 곧바로 필립을 용서해 주었을 거예요. 그리고 모두가 이 기울어진 탑을 보고 놀라워하는 광경을 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어 댔어요. 자, 치즈, 찰칵!왜 기울었을까요?탑이 세워진 토양이 가라앉으며 불안정해졌어요. 도시 전체가 석호 위에 지어졌기에 놀랄 일도 아니죠. 땅과 물길의 경계인 자리에 건물을 짓는다면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답니다. 웅장한 종탑 이 비스듬한 탑은 사실 두오모라고 하는 피사 대성당에
16세기 초, 탐험가들은 남미의 인디언들이 고무나무에서 배어 나온 액으로 만든 고무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어요. 그 후 유럽인들은 고무를 채취해 고무모자ㆍ고무장갑ㆍ고무병 등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무밴드는 누가 발명했을까요?1820년 어느 날, 영국인 핸콕이 고무병을 들고 생각했어요.‘이 고무병을 세로로 자르면 여러 용도로 쓸 수 있겠는 걸?’핸콕은 고무병을 세로로 잘라 여러 개의 고무링을 만들었어요. 고무밴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당시에 핸콕은 특허권의 상식이 없어 특허 출원을
영국에서 시작된 베이컨은 돼지 뱃살이나 옆구리 살을 얇게 저며 소금에 절인 후 연기로 익혀 만들었어. 이후 베이컨은 영국인들에 의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졌어. 그런데 잘 봐, 선생님이 베이컨을 집게로 들어 올리면 무언가가 뚝뚝 떨어질 거야. 보이니? 바로 기름이야. 베이컨을 구우면 프라이팬을 흥건하게 적실 만큼 기름이 생기는데, 이것으로 폭탄을 만들려고 했던 나라가 있어. 1942년 2차 세계전쟁 중이던 미국에 생각지도 못한 운동이 일어났어. 베이컨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을 버리지 말고 모으자는 운동이었지. 이유가 뭘까? 베이컨
농경 생활과 함께했던 돼지돼지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어.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인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야생 동물의 뼈와 암벽화가 보존되어 있어. 야생 돼지가 가축화된 것은 인간의 정착 생활과 관련이 있어. 농사를 짓기 위해 한곳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음식을 저장했으며 음식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들은 움막 주위와 밭에 뿌렸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돼지는 움막 주변의 음식 찌꺼기를 자주 찾았어. 사람들이 움막 주위를 서성이는 돼지를 잡아 우리에 가두면서 가축으로 기르게 된 거지. 돼지는 기르기 편한 동
피시앤칩스는 영국의 대표 음식이야. 피시앤칩스는 유대교와 관련이 있어. 유대인들은 습관처럼 생선과 감자를 튀겨 먹었어. 몇몇 유대인들은 생선튀김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식당에서 생선튀김을 맛본 영국인들은 바삭하고 담백한 맛에 빠졌어. 영국에서는 대구나 가자미가 많이 잡혔기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생선을 튀겨 보기로 했어. 일부 영국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생선 튀기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지. 시간이 흘러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어. 전쟁 속에 철로와 도로가 끊기고 식량마저 부족했는데, 이때 영국인을 버티게 해 준 것이 피시앤칩스야. 독일은 영
“바다다. 엄마, 저기 봐.”선이의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법성포에 도착한 엄마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주차를 마친 엄마가 전화를 했다. “미숙아, 도착했어. 식당으로 갈게.”선이와 엄마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식당 문이 열리며 빨간 앞치마를 두른 미숙 이모가 나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미숙 이모와 엄마는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선이는 배가 고팠던 터라 메뉴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영광에 왔으면 굴비를 먹어야지. 좀만 기다려. 금방 차려 줄게.”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굴비찜, 굴비구이, 굴비
장 프랑수아프랑스 혁명 시기의 어린이열 살 소년 장 프랑수아는 1790년 파리에서 살고 있어. 재단사인 아버지와 함께 일하지. 프랑스에서는 통치 방식을 바꾸려는 혁명을 시도하고 있어. 왕, 귀족, 교회가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그렇지만 프랑수아의 가족도 가난하고 배가 고파. ▲ 혁명 시기의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수도 파리 근처에서 시작되었지만 가난한 시골 농민들도 혁명을 지지했어. 1793년 방데 지역에서 일어난 ‘3년 전쟁’으로 혁명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졌지. ▲ 배고픔에 시달리다가뭄과 추운 날씨로
알렉 제프리스 박사는 옥스퍼드 대학교 생화학 박사 학위와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유전학 박사과정을 마쳤어요. 그는 여러 사람의 DNA를 X선 촬영을 해 연구하다가, DNA도 지문과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어요.DNA는 머리카락, 피부, 혈액 등에서 채취할 수 있어요. 범죄자들을 조사하는 기관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를 환영했어요. 최초로 DNA를 이용한 판결은 부모가 영국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소년의 말을 증명하는 사건이었어요. 영국의 이민국에서는 이 소년의 말을 믿지 않고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어요.소년의 변호사는 즉시 소년
이번에 선생님이 준비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생선초밥이야. 일본말로는 스시, 우리나라에서는 초밥이라고 하지.초밥이 일본의 대표 음식이 된 사연을 지금부터 시작할게. 고대 일본인들의 고민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었어.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거든. 다양한 방법으로 생선 저장 방법을 찾다가 동남아시아의 저장법을 알게 됐어. 동남아시아에서는 생선에 소금을 뿌려 쌀밥과 버무린 다음 나무통이나 항아리에 저장했거든.일본 사람들은 생선을 빨리 상하게 하는 내장을 제거했어. 그런 다음 깨끗이 씻어 소금을 뿌리고 쌀밥에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바다의 보리, 고등어고등어는 ‘등이 부풀어 오른 물고기’라는 뜻의 고등어 외에 여러 이름이 있어. 생김새가 옛날 칼과 비슷하다고 해서 ‘고도어(古刀漁)’, 어린 고등어는 ‘고도리’, 잡는 순간 배에서 바로 소금으로 절여야 했기 때문에 ‘뱃자반’, 그리고 무늬를 가진 물고기라는 뜻의 ‘벽문어’라고도 해. 『세종실록』에 고등어가 황해도와 함경도 지방의 특산물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고등어를 먹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고등어는 단백질과 오메가-3 지방산이 많아 건강 보조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어. 특히 기억과 학습
테라사는 전염병이 널리 퍼지던 134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녀야. 아버지는 상인인데, 흑사병으로 가족의 삶이 황폐해졌어. 테레사의 많은 친구들도 이 병에 걸렸어. 병에 걸리면 열이 나고 피부가 검게 부어오르다가 며칠 만에 죽게 돼. 흑사병사람들은 이 전염병을 ‘흑사병’이라고 불러. 치료법이 없고 병균이 벼룩에 기생한다는 걸 아직은 몰라. 벼룩은 쥐와 여러 동물의 몸에 기생하면서 비위생적인 마을과 도시에서 번성하지. 흑사병의 확산흑사병은 중국에서 흑해에 이르는 교역로를 따라 퍼졌어. ‘카파’라는 도시를 출발한
이번에는 동그란 빵 사이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소고기와 채소, 그리고 달달한 소스가 더해진 음식이 주인공이야. 친구들이 추측한 대로 오늘의 요리는 햄버거가 맞아. 그렇다면 미국의 대표 요리로 알려진 햄버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햄버거는 몽골에서 시작됐어. 정확히 말하면 몽골계 기마 민족인 타타르족이지. 이들은 이동이 잦았기 때문에 불을 피워 요리할 시간과 장소가 마땅치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이동 중이던 타타르족은 ‘말 위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타타르족은 소를 손질하던 중 질긴 부위를 말안장 아래에 넣
뿔에서 똥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역사학자들은 소가 가축화된 것을 기원전 7000~6000년경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으로 보고 있어. 우리나라는 김해의 패총에서 2000여 년 전의 소뼈가 발굴되기도 했지. 유럽에서는 우유와 버터, 치즈, 소고기 등의 식품을 얻기 위해 소를 키웠어. 다른 나라에서는 농사를 짓는 데 소를 활용했어. 소의 노동력이 중요했기 때문이야. 농사가 기본이었던 우리나라는 신라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우경법’을 장려했어. 소가 중요했던 만큼 정월 대보름에 소에게 오곡밥과 나물을 주며 애지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