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 (1847~1931)

▲ 유년 시절의 토머스 에디슨.
▲ 유년 시절의 토머스 에디슨.

 

 

노재미 선생님: 얘들아, 선생님이 퀴즈 하나 내볼까? 1997년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에서 지난 천 년간 가장 중요한 인물 1위로 과학자 한 명을 선정했어. 과연 누굴까?

오디: 앞에서 배웠던 아인슈타인 박사님이나,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아닌가요?

아이작 뉴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고 수학자예요. 근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이론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풀어낸 사람이죠.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죠

노재미 선생님: 힌트를 주자면, 1983년에 미국 의회가 ‘발명가의 날’을 정할 때 이 사람의 생일로 했지.

세이: 아, 에디슨이요!

노재미 선생님: 정답이야. 에디슨은 사는 동안 1093개의 특허와 2000여 개의 발명품을 남겼어. 성인이 된 후로 따지면 열흘에 한 개꼴로 발명품을 내놓은 셈이지.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미국 전역의 도시들이 전등을 1분 동안 일제히 소등하며 그를 추모했다고 해.

세이: 에디슨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노재미 선생님: 맞아. 하지만 에디슨은 학교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중퇴했어.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탓에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거지. 이후 에디슨은 열두 살부터 철도역에서 신문을 팔기도 했단다. 그뿐만이 아니라 선천적인 청각 장애로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하루 6시간 이상은 자지 않으며 발명에만 매달렸다고 해.

▲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전구.

 

백열전구를 비롯해 축음기, 축전지, 영화 촬영기 등이 모두 그의 발명품이야. 하지만 이 천재 발명가도 단 한 곳에서만은 인정받지 못했어. 과학자에게 가장 영예롭다는 노벨상을 받지 못한 거지. 

오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노재미 선생님: 과학계에서 떠도는 소문이긴 하지만 노벨상위원회가 발명가에 대한 수상을 꺼려했다는 말이 있어. 그 이유는 19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리프만 때문이야. 리프만은 최초로 컬러사진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게 현대 컬러사진의 원리와 전혀 달랐거든. 그 이후 발명가에게 노벨상이 돌아가지 않았던 거야.

세이: 그럼 에디슨은 노벨상 후보로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나요?

노재미 선생님: 에디슨에게 노벨상 수상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 1912년 노벨상위원회는 물리학상 수상자 후보로 에디슨을 지목했어. 그런데 공동 후보로 지목된 니콜라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받는 상은 싫다며 거절한 거지. 둘의 악연은 1884년 6월 테슬라가 에디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됐어.

▲ 에디슨의  라이벌이자 또 다른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당시 테슬라는 직류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에게 더 실용적인 교류 전기로의 전환을 제안했지. 하지만 이미 직류 전기에 많은 투자를 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제안을 거절했던 거야. 이후 테슬라는 에디슨이 거절한 교류전기의 연구에 힘써 세계 최초의 교류 전기 모터와 변압기 등의 특허를 획득했단다. 

오디: 그래도 에디슨이 얼마나 많은 발명품을 남겼는데……. 노벨상을 못 받은 건 너무한 거 같아요.

노재미 선생님: 사실 에디슨에게는 또 한 번의 노벨상 수상 기회가 있었어. 전구의 밝기 개선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에디슨 효과’ 때문이었지. 에디슨은 탄소필라멘트를 수명이 긴 대나무 숯으로 바꿨어. 그러자 대나무 필라멘트가 증발해 전구 안쪽의 유리벽에 검은 그을음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한 거야. 에디슨은 그 같은 현상을 순수한 금속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어. 그 과정에서 필라멘트 사이에 금속판을 넣고 백금으로 만든 선에 연결하자 백금 조각과 필라멘트 사이의 진공관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관찰된 거지. 더욱 신기한 건 백금 조각을 양극(+)에 연결하면 허공에 전류가 흐르지만 음극( - )에 연결했을 땐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 이후 영국의 물리학자 오언 리처드슨에 의해 *에디슨 효과가 과학적으로 규명됐지.

에디슨 효과
진공 상태에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에디슨이 처음으로 이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에 에디슨 효과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하지만 이 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해 증명해낸 건 오언 리처드슨이에요. 그는 진공 상태에서 필라멘트를 가열하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해내 노벨상을 수상했어요.

오디: 그 정도면 에디슨이 거의 다 연구한 거나 다름없는 거 같은데요? 아깝다.

노재미 선생님: 에디슨 효과를 증명한 리처드슨은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만, 그때도 에디슨은 공동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해 결국 노벨상을 받지 못했단다. 

세이: 그런데 에디슨은 왜 그처럼 중요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않았을까요?

노재미 선생님: 에디슨이 최초의 진공관을 발견하고도 그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 당시 많은 특허 분쟁과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던 터라 더욱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발명하기 위해 그 현상에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설명이 그중 하나지. 또 다른 설명으로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평소 이론 규명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어. 실제로 그의 연구 방법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수없이 시도하는 시행착오적 방식으로 진행됐거든. 이에 대해 에디슨은 “쓸모없는 실패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과학적 이론의 부족은 그의 치명적 단점으로 남아 있단다.

세이: 노벨상도 운이 따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재미 선생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모든 걸 운에 맡기는 습관은 좋지 않겠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 에디슨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운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땀이고 노력이라는 거지. 


/자료 제공:‘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이성규 지음ㆍ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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