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파인만
(1918~1988)

▲아인슈타인만큼이나 괴짜 과학자인 리처드 파인만.
▲아인슈타인만큼이나 괴짜 과학자인 리처드 파인만.


 

노재미선생님: 얘들아, 만약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접시를 떨어뜨렸어. 너희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니?

오디: 일단은 옷에 튀면 냄새가 나니까…… 친구가 접시를 떨어뜨리는 순간 재빨리 피해야죠.

세이: 저는 먼저 친구가 다치지 않았나 살펴보고, 떨어뜨린 접시를 함께 정리해줄 거예요.

노재미선생님: 그래, 다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있단다. 괴짜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

오디: 왜 그런 것을 연구한 거죠?

노재미선생님: 파인만은 동료가 접시를 떨어뜨린 순간 접시 주위에 부착된 장식물이 흔들리면서 붕 떴다가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어. 이후 그는 접시의 운동을 계산해 각도가 매우 작을 때 장식물의 회전 속도가 진동 속도의 두 배라는 사실을 알아낸 거야.
 
오디: 생각만 해도 어렵고 복잡한데, 왜 그런 것을 연구한 거죠?

노재미선생님: 파인만은 접시의 움직임과 관련해 ‘만약 전자라면 이것이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던 거야. 그는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모두 더할 경우 전자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수식 대신 간단한 그림으로 그렸지. 이게 바로 아원자 입자의 행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이란 거야.

세이: 아하, 그렇게 해서 노벨상을 받게 된 거군요? 

▲원자폭탄을 개발한 줄리어스 로버트오펜하이머와 함께 있는 젊은시절의 리처드 파인만.
▲원자폭탄을 개발한 줄리어스 로버트오펜하이머와 함께 있는 젊은시절의 리처드 파인만.

 

노재미선생님: 그렇지. 이 업적을 비롯해 파인만은 전자기장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양자전기역학을 만든 공로로 줄리안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지. 이후 그는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파인만 다이어그램과 기타 연구들이 전부 그날 접시를 연구한 결과에서 비롯됐다고 밝혔어. 파인만은 자신이 하는 일이 과학 발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는 그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느냐부터 먼저 따졌어. 그렇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걸로도 유명해. 

세이: 노벨상을 귀찮게 여기다니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이런 특이한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을 거 같아요.

노재미선생님: 리처드 파인만은 아인슈타인만큼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물리학자였어. 그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어서 출간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 그의 대중적 인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 중 하나가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 규명 사건이야. 1986년 초 챌린저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 폭발해 탑승한 우주비행사 7명 모두가 사망했어.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워낙 컸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조사위원회가 곧바로 꾸려졌어. 리처드 파인만도 포함되어 활동했는데, 그의 활동은 좀 특이했다고 해. 다른 조사위원들은 주로 NASA의 경영진

▲발사 전 챌린저호의 모습(챌린저호는 발사 73초만에 공중 폭발했다).
▲발사 전 챌린저호의 모습(챌린저호는 발사 73초만에 공중 폭발했다).

 

및 책임자들을 만나고 다닌 데 비해, 그는 현장 실무자들과 기술자들을 접촉하고 다닌 거야. 그 결과 그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 파인만은 사고 원인으로 오링(O-ring)이라고 불리는 작은 고무링을 지목했고, 추운 날씨 때문에 이 오링이 탄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냈지. 파인만은 당시 TV로 중계된 챌린저호 폭발 사고 규명 청문회에 출연해 이 오링을 얼음물에 직접 담가 보이며 설명을 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지. 

세이: 참 멋진 사람이에요.

노재미선생님: 1918년 5월 11일 뉴욕에서 태어난 파인만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23세의 나이로 박사 학위를 받았어. 이후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폭발의 에너지 생산량 예측 공식을 만드는 작업을 했지. 이때 그의 팀 리더였던 한스 베테(196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파인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해. “그는 마술사였다. 그리고 내가 만난 물리학자 중 가장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세이: 너무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사람이어서, 어쩐지 과학 외에 다른 데에도 많은 호기심을 보였을 것 같아요.

노재미선생님: 맞아. 전문적인 마야 문서 해독가이자 훌륭한 드럼 연주자이기도 했던 파인만은 말년에 중앙아시아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국가 투바의 여행 계획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해. 10여 년간 많은 준비를 했는데 그곳에 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지. 

오디: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해놓고 왜 못 갔나요? 

노재미선생님: 당시 투바는 소련의 자치공화국이었고,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파인만이 죽은 뒤 투바의 수도 키질의 한 기념비에 파인만을 기념하는 비문이 새겨졌지. 1988년 2월 15일 파인만은 5년간의 암 투병 끝에 69세의 나이로 사망했어. 그때 그는 마지막으로 “두 번 죽기는 싫어. 그건 정말 지루하단 말이야”라는 말을 남겼어. 그가 지은 책 <<남이야 뭐라하건!>>이라는 제목처럼 항상 남과 다르게 살아온 그의 모습은 애플사의 유명한 광고 시리즈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에 사용된 걸로도 유명하지.
 

 

/자료 제공:‘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이성규 지음ㆍ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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