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으뜸가는 공신이었다
조선의 주요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새 나라의 토대를 다져 가던 정도전에게 위기가 찾아왔어. 명나라가 표전문을 트집 잡아 정도전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나선 거야.
표전문이란 중국 황실에 올리는 외교적인 글이야. 거기에 명나라를 깔보는 듯한 글귀가 있다며 글을 지은 사람들을 보내라는 거야. 겉으로는 그랬지만 실은 주원장과 정도전의 오랜 갈등이 원인이었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처음부터 정도전을 몹시 미워했어. 아니 미워한다기보다는 두려워했는지도 몰라. 정도전은 틈만 나면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군사들을 훈련
시켰거든.
“우리 조선의 역사는 고구려 이전부터이며, 다스리던 땅은 만주와 요동을 아우른 넓은 대륙이었다. 마땅히 우리는 옛 조선의 땅을 되찾아야 한다.”
정도전의 배포를 아는 주원장은 정말로 조선이 쳐들어올까 봐 속으로 겁을 냈대. 그래서 표전문을 핑계 삼아 정도전을 잡아가거나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던 거야.
정도전은 그 꾐에 말려들지 않았어. 오히려 명나라 사신이 보는 데서 조선 군사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 큰 나라랍시고 조선을 우습게 본다면 혼내 주겠다는 듯이 말이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옛 조선과 고구려의 땅을 되찾겠다는 벅찬 꿈이 타오르고 있었어. 이렇게 정도전이 강하게 반발하자 결국 명나라도 포기하고 말았지. 표전문 문제는 다른 사신이 가서 좋게 해결했고, 다시는 정도전을 걸고넘어지지 않았어. 
정도전의 진짜 위기는 후계자 문제 때문이었어. 이성계가 11세밖에 되지 않은 막내 아들 방석을 다음 왕이 될 세자로 삼은 게 탈이었어. 
사실 건국에 가장 공이 큰 왕자는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었거든. 모두들 그가 세자가 될 줄 알았는데, 태조는 이방원을 매우 싫어했어. 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는 거야. 특히 정몽주를 죽인 걸 두고두고 원망했어. 그런 이방원이 왕이 되면 어진 임금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믿었어. 다음 왕은 흠이 없어야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편안하게 나라를 다스릴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런 이성계의 생각은 정도전의 뜻이기도 했어. 이에 이방원은 힘없는 어린 방석을 왕으로 세워 놓고 정도전과 공신들이 권력을 거머쥐려 한다고 생각했지. 공신 책봉에서도 소외되고 나랏일에서도 밀려난 이방원은 정도전을 밀어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 정도전 역시 세자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왕자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어.

 

‘장성한 왕자들의 힘이 너무 세다. 그건 그들에게 사병이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왕자들의 사병을 모두 나라의 군대로 흡수하려 했어.
“사병을 혁파해야 합니다. 이제 나라가 새로 섰으니 모든 사병은 국가의 군대로 삼아야 합니다. 개인이 군사를 가지면 나라의 위엄이 서지 않고 반란의 위험이 있습니다.”
정도전의 강력한 주장에 태조는 사병을 모두 국가의 군대로 소속시킬 것을 명했어. 사병이 많은 이방원의 형 이방간이 크게 반발했어. 
“사병을 뺏은 다음엔 우리 목숨을 뺏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치는 게 어떻겠는가?”
이방원은 흥분한 이방간을 달래며 기회를 엿보자고 했지. 1398년 음력 8월 25일, 그 기회가 왔어. 그날 태조가 앓아누워 있었거든. 그 일을 구실로 정도전은 왕자들을 밤에 대궐로 들어오라고 연락했어. 이방원과 왕자들이 부름을 받고 대궐 앞에 이르렀지. 
“아, 잠깐. 배가 사르르 아픈 게 변소를 좀…….”
이상한 생각이 든 방원은 변소에서 곰곰 생각해 봤어.
‘궁궐 문은 밤마다 등불을 켜서 밝혀 두는 법이다. 그런데 오늘은 등불을 켜 두지 않았어. 저 문안에서 정도전이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섬뜩한 생각이 든 이방원은 함께 온 형 이방간을 설득해서 발길을 돌렸어. 집으로 돌아오니 이방원의 부하인 이무가 다급히 찾아와서 말했어.
“무사하셨군요. 오늘 밤 정도전이 대군을 비롯한 왕자들을 제거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방원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방간에게 연락해서 함께 군사를 일으켰어. 그는 군사 지휘부인 삼군부를 점령한 다음 대궐로 들어갔어. 그리고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을 죽여 버렸어.
“날이 밝기 전에 정도전을 찾아라. 그를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수소문 끝에 보고가 날아들었어.
“정도전은 친구 남은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즉시 그곳으로 쳐들어간 이방원은 곧바로 정도전을 제거했지. 이 사건을 ‘무인정사’ 또는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해. 
날이 밝자 이방원은 밤사이에 벌어진 일을 널리 알렸어.
“정도전은 신하된 자로서 왕실을 우습게 여기고 이 나라를 삼키려 하였다. 더욱이 전하(이성계)의 병환을 핑계 삼아 우리 형제들을 밤중에 대궐로 불러들여 모두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치 않아 이들을 토벌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어. 역사에는 정도전이 먼저 난을 꾸몄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꾸며졌을 가능성이 짙어. 정도전은 삼군부의 우두머리이면서도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고, 별 저항도 없이 죽었거든. 만일 정도전이 먼저 난을 꾸몄다면 병권을 거머쥔 그가 그토록 쉽게 당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그날 왕자들을 불러들여 죽일 생각이었으면 한가하게 남은의 집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지도 않았을 테지. 하지만 정도전 역시 이방원을 제거하거나 힘을 못 쓰게 만들 작전을 짜고는 있었을 거야. 정도전은 왕족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도 법으로 막으려 했거든. 이런저런 이유가 다 이방원에게는 걸림돌이었지. 그래서 결국 이방원이 먼저 기습을 한 거야.
이렇게 정도전의 삶은 끝나고 말았어. 왕이 된 이방원(태종)은 정도전을 공신록에서도 빼고 역적으로 기록하게 했어.
하지만 정도전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었어. 조선은 그의 계획대로 건국되었고, 그 후에도 조선은 그의 계획에 맞춰 운영했거든. 정도전을 제거한 이방원조차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 등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대.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안 대부분이 정도전의 책에서 나왔어. <<조선왕조실록>>에서 정도전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볼까?

조선 왕조가 일어서는 데는 정도전의 힘이 컸다. 모든 일에 그가 힘을 써 큰 업적을 이루었으므로 참으로 으뜸가는 공신이었다. 그러나 도량이 좁아 남을 시기하고, 또 겁이 많았다. 그래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꼭 해치려 하고, 옛날에 감정을 품었던 사람에게는 기어코 보복하려 하였다. 

정도전의 재능과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품성은 나쁘게 평하고 있지. 하여튼 그 후 조선은 정도전의 계획대로 흘러가게 된단다. 정도전이 계획한 조선은 어떤 역사를 엮어 가게 될까?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⑥ 고려 후기: 어두운 시대에 등불을 밝히다’(박윤규 글ㆍ이경석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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