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만들기
지구엔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널리 사용하는 문자는 몇 가지 안 돼. 알파벳을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지만,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글이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해.
세종은 어쩌다가 이런 기발한 문자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그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어. 왜냐하면, 세종은 문자 만드는 일을 철저히 비밀로 했거든. 왕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도 전혀 몰랐으니까.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왕이 발표하고 나서야 <<조선왕조실록>>에 짧게 기록했을 정도야.
오늘날 자료를 통해 추측해 보면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에게 유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것 같아. 세종은 왕이 되자 백성들의 효심을 길러 주려고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펴냈어.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어. 한자로 되어 있어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책을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또 일부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죄를 저질러 벌을 받기도 했어. 그게 모두 글자를 못 배워 생긴 일이라고 세종은 생각했어. 먹고살기에도 바쁜 백성들은 한자를 배울 시간조차 없었거든. 그래서 좀 더 쉬운 이두(우리말 발음에 맞게 적은 한자)로 책을 펴낼까도 생각했지만 그 역시 한자로 되어 있으니 별 소용없는 일이었지. 
“아,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세종은 문자와 관련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새 글자 만들기를 작정한 건 왕위에 오른 지 19년째인 1437년쯤부터일 거야. 그해부터 세종은 자잘한 일은 대신들에게 넘기고, 중요한 결재는 세자(문종)에게 대신 시키기 시작했거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러긴 했으나, 그 시기에 문자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들여온 걸 보면 몰래 연구를 한 것 같아.
그런데 세종은 왜 새 글자 만드는 일을 비밀로 했을까? 당시 집현전에는 뛰어난 학자들이 많았어. 하지만 한자 사용에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던 학자들은 새 글자 만드는 일을 찬성하지 않았지. 오히려 그런 일은 오랑캐나 하는 일이라며 무시할 정도였어. 게다가 중국(명나라)에서 알면 외교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었거든. 그리고 새 글자를 만드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 제대로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세종은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글자를 연구한 거야.
하지만 조금씩 도와준 사람은 있었어. 주로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가족들이었지. 세자와 그의 아우들도 도왔을 걸로 짐작되는데, 특히 문자와 언어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정의 공주의 도움이 컸대. 왕자들이 풀지 못하던 문제를 정의 공주가 해결해서 큰 상을 받기도 했거든. 
집현전 학자들 가운데는 정인지와 젊은 학자인 성삼문, 신숙주의 도움이 컸어. 하지만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한 건 아니었어. 세종의 명을 받아 자료를 구해 오고, 훈민정음 창제 후에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 

 

1443년, 드디어 훈민정음이 완성되었어.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시 예상했던 대로 집현전의 우두머리인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학사들의 반발이 컸어. 그들은 집단으로 상소문을 올려 새 글자를 만든 임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지.
“새 글자를 만드는 건 오랑캐나 하는 일로 명나라에서 알면 비난받을 것입니다. 또 백성들은 설총이 만든 이두를 쓰면 되는데 굳이 새 글자를 만들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문자 창제가 국가의 일이라면 공식적인 절차와 회의를 거친 후 해야 마땅합니다.”
세종은 그들의 상소 내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잘못을 깨우쳐 주었어. 
“새 글자는 우리말을 바르게 적을 뿐만 아니라 이는 한자를 바르게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너희들이 운서와 자모를 제대로 아느냐? 설총이 만든 이두는 좋다 하면서 내가 만든 것은 잘못이라 하느냐?”
세종은 왕의 위엄이 아닌 실력과 논리로 그들을 제압했지. 그래도 고집을 부리는 학사들은 감옥에 가두어 버렸어. 금방 풀어 주기는 했지만, 말이 크게 어긋나고 괘씸한 자는 과감히 파직을 시켰어.
1446년, 3년 동안의 실험과 연구 끝에 드디어 훈민정음이 백성들의 품에 안겼어.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자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널리 사용하라!”
세종은 훈민정음이 빨리 퍼지고 정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폈어. 우선 <<석보상절>> 같은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풀이한 책들을 펴냈어. 또 왕실에서 모범적으로 사용하고, 궁궐의 궁녀와 내관들도 쓰도록 했어. 세종 스스로 훈민정음으로 석가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지. 결정적으로 훈민정음을 과거 과목으로 삼아 버렸으니 선비들도 안 배울 도리가 없었지. 세종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알 만하지.
이렇게 하여 인류사의 문자 혁명이라 할 만한 대사건이 조선에서 일어난 거야. 뛰어난 학자인 왕이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이루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지. 훗날 한글로 불린 위대한 문자는 이렇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단다.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⑦ 조선 전기: 문화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박윤규 글ㆍ순미 그림ㆍ시공주니어)

저작권자 © 소년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