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강릉 소녀
강릉 오죽헌. 외출에서 돌아온 집주인 이사온은 딸과 외손녀 인선을 불렀어.
“우리 인선이가 보면 좋아할 만한 것을 어렵게 구해 왔다. 무엇이겠느냐?”
가만히 생각을 곱씹던 인선의 대답이 톡 튀어나왔어.
“안견 선생님 그림!”
이사온은 웃으며 감추었던 길쭉한 통을 건네주었어. 인선은 두루마리 통을 열고 속에 든 것을 꺼내 마루에 펼치고는 환호성을 터뜨렸어. 
“와! 최고예요!”
안견의 산수도 한 폭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드러났어. 조선 제일의 화가라는 안견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손녀를 위해 외할아버지가 멀리까지 가서 구해 온 작품이야.
“네 그림이 날로 발전하니 따로 스승이 필요하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이 그림을 스승 삼아 따라 그려 보아라. 좋은 공부가 될 거야.”
안견의 그림은 신선들의 세계를 그린 것이었어. 뾰쪽한 산봉우리를 감싼 구름과 계곡을 적시는 물줄기, 학이 날고 사슴이 뛰노는 광경이 화려하기 짝이 없었지. 
“너도 그릴 수 있겠니?”
어머니 이씨의 물음에 인선은 작게 “예.” 하고 대답하고는 그림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어. 인선은 그림과 높은 산에서 바라본 산줄기들을 비교해 보았어. 그렇게 며칠간 산과 그림을 비교하며 관찰한 다음 마침내 산수화 한 폭을 그려 냈어.
“얘, 인선아. 이건 안견의 그림과 전혀 다르지 않느냐?”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지. 인선은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설명했어. 
“안견 선생님의 그림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뒷산에 올라가 강릉의 산을 살핀 다음 그것을 그린 것입니다. 안견 선생님의 그림에서는 붓놀림과 색채 사용하는 걸 배웠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마주 보았어. 부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지.
“이제 갓 일곱 살인 아이가 자기 그림을 그리다니, 실로 하늘이 낸 신동이로다!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으니 이제 정말 스승이 필요 없겠구나.”

 

그림 그리는 소녀 신인선, 이 아이가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화가인 신사임당이야. 그의 탄생 내력과 성장기를 알아보려면 먼저 부모와 조상부터 살펴야 해.
최치운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김시습의 이름을 지어 준 바로 그 학자잖아. 그의 고향이 강릉이라, 말년에 강릉 북평촌에 집을 짓고 살았어. 아들 최응현이 집을 물려받아 별당을 짓고는 오죽헌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의 딸과 사위 이사온이 살게 된 거야.
이사온에겐 외동딸이 있었는데, 학문과 덕행이 여느 선비 못지않았어. 이사온은 딸을 한양 사람 신명화와 짝을 지어 주었어. 신명화는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의 후손이었어. 신명화와 부인 이씨는 딸만 다섯을 낳았는데, 둘째가 바로 신인선이야. 1504년에 오죽헌에서 태어났지. 외할아버지 이사온은 일찌감치 인선의 재능을 알아보고 학문을 가르치고 그림을 배우도록 했어. 학문과 그림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자 인선은 스스로 호를 지었어.
“할아버지, 이제부터 호를 ‘사임당’으로 할까 해요.”
“사임당이라? 무슨 뜻이냐?”
“<<열녀전>>에 나오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본받겠다는 뜻입니다.”
외할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어.
“태임의 태교를 설명할 수 있겠느냐?”
인선이 다소곳이 대답했지.
“예. 태임은 문왕의 어머니로서 말과 행동이 위엄 있고 반듯했습니다. 아이를 가져서는 눈으로는 나쁜 것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고, 입으로는 오만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덕성을 잘 갖춘 문왕을 낳았고, 문왕은 무왕과 주공을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무왕이 도탄에 빠진 은나라를 물리치고 주나라를 세웠고, 주공은 학문을 익혀 유교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런 태임을 스승 삼아 너도 지혜롭게 가정을 꾸리거라.”
“예.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이렇게 인선은 호가 사임당이 되었고, 훗날 이름보다 더 알려지게 된 거야.

올곧은 태도로 가정을 이끌다
1522년, 열아홉이 된 사임당은 세 살 많은 한양 선비 이원수와 혼인했어. 이원수의 본관은 덕수(경기도 개풍군 덕수리)인데, 특출한 데는 없으나 수수하고 어진 사내였어. 사임당은 한양 시댁으로 가지 않고 강릉의 친정에 남았어. 당시에는 친정에서 아이를 낳아 얼마간 키워서 시댁으로 가는 풍습이 있어서 특별한 일은 아니었어.
이원수는 장인 신명화가 그랬듯이 한양과 강릉을 오가며 생활을 해야만 했어. 그러니 일도 공부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겠지. 사임당은 그 점이 무척 안타까웠어. 아버지 신명화가 세상을 떠나자 사임당은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어.
“이래서야 어떻게 큰 뜻을 이루겠습니다. 10년을 기한으로 떨어져 서방님은 학문에 몰두하시고, 저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이원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내의 의견을 따랐어. 하지만 이원수는 대관령도 못 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어.
“한시도 당신과 떨어지기 싫은데, 10년을 헤어져 살다니 너무 가혹하지 않소?”
사흘째 돌아온 이원수가 불만을 터뜨렸어. 사임당은 바느질 그릇에서 가위를 꺼냈어.
“집안의 장래를 짊어진 서방님께서 이렇듯 유약하다면 제가 무슨 희망을 갖고 살겠습니까. 차라리 이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중이 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두 눈을 부릅뜬 사임당의 말에 이원수는 새파랗게 질렸어. 
“부인, 내가 잘못했소. 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다.”
불에 덴 듯 놀란 이원수는 다음 날로 한양으로 가서 학문에 정진했어. 하지만 10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사임당을 한양 시댁으로 보냈거든. 사
임당은 처음으로 강릉과 오죽헌을 떠나게 되었지. 사임당의 한양살이는 무척 고달팠어. 자주 이사를 다녔고, 한양을 떠나 평창에 가서 살기도 했거든. 그런 와중에 살림하고 아이를 낳고 그림까지 그리느라 피곤한 나날을 보냈어. 하지만 사임당의 올곧은 태도는 한결같았어. 그 무렵,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남편 이원수는 재상 이기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거든. 먼 친척인 이기에게 잘 보여 벼슬자리라도 하나 받아 보려던 속내였지. 이를 알아챈 사임당은 남편에게 간절히 충고했어.
“그 댁엔 드나들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당숙께서는 지금은 정승이지만 크게 덕망을 잃어 훗날 반드시 후회스러운 일을 당할 테니 조심해야 합니다.”
아내의 말은 옳다는 걸 아는 이원수는 이기의 집에 발길을 끊었어. 사임당의 예상은 정확했어. 이기는 명종의 외숙부 윤원형과 더불어 수많은 정적을 죽인 을사사화를 일으켰어. 그래서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훗날 벼슬을 빼앗기고 그를 따르던 사람까지 화를 입었어. 이원수도 그의 덕으로 벼슬을 하였더라면 집안을 망칠 뻔했지. 사임당은 이를 일찌감치 내다보고 막은 거야.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⑦ 조선 전기: 문화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박윤규 글ㆍ순미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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