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은 39세에 일곱째인 막내 이우를 낳았어. 그 후로 기력이 떨어진 사임당은 자주 병석에서 지냈어. 그때마다 더욱 그리운 건 고향과 어머니였어. 고향 강릉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는 오늘날까지 애송된단다.

산 첩첩 내 고향은 천 리나 되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라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모래톱 갈매기는 흩어졌다 모이고
파도 머리 고깃배는 오고 가는데
언제나 고향 길 다시 밟아 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까

1550년, 이원수는 수운판관 벼슬을 받았어. 종5품의 중급 관료인데,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의 운송을 책임지는 고된 일이었지. 그럼에도 이원수는 아들들까지 데리고 다니며 그 일을 열심히 해냈어. 남편과 자식이 나랏일을 하는 모습이 사임당이 보기에도 뿌듯했겠지. 하지만 사임당은 그 이듬해를 넘기지 못했어. 이사를 하고서 고단하여 며칠 앓아눕더니 그대로 숨을 거둔 거야. 그리하여 파주 두문리 자운산 기슭에 묻혔는데, 48세밖에 안 된 안타까운 나이였지.
여기서 <<율곡집>>에 전하는 아들 이이의 평가를 살펴볼까.

어머님께서는 온갖 것을 절약하는 일이 몸에 배 있었고, 위아래를 고루 존중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시어머님 홍씨와 의논하여 행하였으며, 아래로 하인들에게도 부드러운 말과 화평한 기색으로 자상하게 타일렀다. 혹시 아버지께서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친히 이야기하고,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시비를 정확하게 가려 훈계하며, 아랫사람들의 허물을 올바르게 꾸짖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받들었다.

사임당은 흔히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어. 대학자 이이를 낳고 가르친 뛰어난 교육자이기도 했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디까지나 화가였어. 그렇다면 그의 작품 세계를 알아봐야겠지? 그의 그림은 늘 평범한 일상에서 피어났어. 
한양 수진방(지금의 청진동 근처)에 살던 어느 날이야.
“아이고 마님,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하루는 가난한 이웃 아낙네가 울상이 되어 찾아왔어.
“무슨 일인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가?”
사임당의 물음에 아낙네는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놓았어. 고급스러운 비단 치마가 나왔어. 
“김 진사 댁 마님한테 빌린 옷인데 잔칫집에서 그만 음식을 쏟아 옷을 버렸지 뭡니까. 어쩌면 좋을까요?”
사임당은 얼룩을 자세히 살폈어. 검은 얼룩이 크게 생긴 비단 치마는 그대로 입기 힘들 것 같았어.
“그 옷은 두고 갔다가 모레쯤 와서 찾아가게. 내가 말끔히 손봐 놓을 테니까.” 
아낙네가 가고 나자 사임당은 붓과 물감을 꺼냈어. 그리고 검은 얼룩이 생긴 곳에 포도송이를 그려 넣었어. 그 주위로 잎사귀와 넝쿨을 자연스럽게 더했지.

 

사임당은 이틀 후 찾아온 이웃 아낙네에게 비단 치마를 내밀었어. 치마의 얼룩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먹음직스런 포도송이가 그려져 있거든. 
“세상에나! 침이 꼴깍 넘어가네요. 그런데 김 진사 댁 마님이 본래 옷이 아니라고 안 받으면 어떻게 하지요?”
“그게 걱정되면 이 치마를 시장에 내다 팔게. 그러면 새 치마를 맞출 수 있을 거야.”
아낙네는 치마를 잘 챙겨서 시장으로 갔어. 아낙네는 치마를 내놓고 포목점 주인에게 값을 물어보았지. 그림을 알아본 주인은 기꺼이 새 치마와 바꿔 주겠다고 했어. 그때 한 부잣집 부인이 옷을 낚아챘어.
“내가 웃돈을 줄 테니 그 치마 나한테 팔게.”
다른 사람들도 몰려들었지.
“이건 치마가 아니라 한 폭의 작품이로군. 나에게 팔게. 돈을 두 배로 줌세.”
이렇게 몇 사람이 흥정을 하는 동안 치마값은 자꾸 올라갔어. 나중에는 고급 비단으로 옷을 몇 벌이나 맞출 수 있을 만큼이나 되었지 뭐야. 아낙네는 김 진사 부인에게 새 치마를 해 주고 남은 돈을 사임당에게 가져왔어.
“그건 자네 것이니 어려운 살림에 보태 쓰게.”
사임당은 웃으며 돈을 돌려주었대.
사임당의 그림은 멋을 부리거나 화려하지 않았어.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 벌레, 꽃, 과일 등을 주로 그렸어. 상상의 세계가 아닌 주변의 사물을 화폭에 담았지. 그림이 얼마나 세밀했던지, 벌레 그림을 말리려고 밖에 내놓았더니 닭이 진짜 벌레인 줄 알고 쪼아 먹은 적도 있대.

 

지금까지 전하는 사임당의 그림은 40점 정도인데,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 조선의 화가 신인선. 이제 사임당을 이렇게 기억했으면 해. 그는 여러 방면에 뛰어났으나 본인은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꾸었고, 지금도 뛰어난 작품으로 남아 있으니까.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⑦ 조선 전기: 문화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박윤규 글ㆍ순미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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