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활동이 어려워진 방정환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 도요 대학 철학과에 특별 청강생으로 다니며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지. 그동안 많은 선각자들이 젊은이를 교육시키는 데 집중했는데, 방정환은 청년보다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한 거야.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또 가장 맑고 깨끗한 하느님의 본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그 아름다운 본성을 더럽히지 않고 잘 키우는 것이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방정환은 그 방법을 먼저 문학에서 찾고자 했어. 그는 라는 시를 지어서 천도
꿈 많은 소년, 손병희의 사위가 되다서울의 어느 집에 아이들이 잔뜩 몰려들었어. 이미 밤인데 서로 머리를 밀치면서 좁은 마당으로 밀려드는 거야. 지나가던 어른들도 궁금해서 빠끔 들여다보았어.“환등기 보려고요. 돈 내야 돼요.” 아이들이 마당에 가득 차자 불빛 한 줄기가 담벼락 쪽을 비추더니 커다란 사진이 나타났어. 화면은 미국의 높다란 빌딩 숲을 보여 주었어. 그러자 한 아이가 화면 옆에서 설명을 시작했어. “이 나라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집들이 솟아서 구름이 창문 옆으로 둥실둥실 떠가고, 새들이 날아가다가 창문으로 들어와 지지
침략의 심장, 이토 히로부미를 쏘다그 이듬해인 1909년 초, 안중근은 동지 11명을 모아 놓고 말했어.“우리는 지금까지 독립을 위해 애썼으나 딱히 이룬 게 없소. 보다 강력한 결심과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오. 우리 다 같이 손가락을 끊어 증거를 보인 다음,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쳐 반드시 목적을 달성하기로 맹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비장한 안중근의 말에 모두 찬성했어. 안중근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들은 저마다 왼손 약지 한 마디씩을 잘라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는 네 글자를 썼어. 이를 단지 동맹이라고 해. 그
두려움을 모르는 소년 명사수1894년에 동학군이 난리를 일으키자, 그 불길이 전국으로 퍼졌어. 황해도에도 동학군이 일어나 관가를 점령하고 양식을 빼 갔어. 그런데 이곳의 동학군은 전봉준의 지도를 받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동학군과 달리 군기가 엄격하지 않고 체계도 어수선했나 봐. 심지어 친일 정부 편을 들거나 백성들의 집을 약탈하는 도적과 같은 무리도 있었대. 황해도의 진사 안태훈은 그런 동학군에 대항하고자 의병을 일으켰어. 총을 가진 포수를 모으고 가족과 친지를 동원하여 의병 부대를 만들었어. 그리고 자기 마을이라도 지키려고 마을 어
황토현의 승리와 전주 화약동학군 소식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이들은 농민이 아니라 역적이오. 다른 지방으로 번지기 전에 토벌해야 하오!”조정에서는 전라도 관찰사 김문현에게 동학군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어. 김문현은 관군 250명에다 돈을 주고 끌어들인 보부상 1000여 명을 이끌고 토벌에 나섰어.4월 6일, 토벌대는 황토현 고개에서 잔치를 벌였어. 전쟁에 나서기 전 사기를 높이려는 작전이었지. 전봉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밤에 기습을 했어. 한바탕 잔치 끝에 곯아떨어져 있던 토벌대는 갈팡질팡이었지. 순식간에 토벌대를 무찌른 동학
키 작은 젊은 훈장때는 1893년 초겨울, 전라도 고부(지금의 정읍)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야.“안 됩니다. 제발 이 송아지만은 놔주세요.”한 농부가 포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통사정을 했어. “놔라! 물을 썼으면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할 게 아니냐.”포졸이 농부의 가슴팍을 발로 내지르고 송아지의 고삐를 잡아챘어.“아이고, 이방 나리. 물세로 쌀 서 말을 냈지 않습니까.”농부는 이방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지.“지난번 쌀은 사또 나리의 부친 송덕비를 세우느라 걷은 것이지 물세가 아니었다. 관가로 가서 곤장을 맞아 봐야 정신을
살아 있는 조선을 그리다1788년, 정조는 명을 내렸어. “금강산과 관동의 명소를 화폭에 담아 오라.”김홍도는 김응환과 함께 설레는 맘으로 금강산으로 떠났어. 정조는 미리 기별을 넣어 금강산 주변의 군수들에게 두 화가를 자신의 측근 신하로 대접하라는 명을 내렸대. 이때 김홍도는 금강산 근처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어. 스승 강세황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강세황의 아들이 금강산 근처의 고을 수령을 맡고 있었는데, 강세황이 미리 와서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이 모든 게 정조의 배려였지.“아, 스승님과 금강산 여행
서자로 태어나 보국숭록대부가 되다허준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양천 허씨 족보에는 1546년에 양천에서 태어난 걸로 되어 있는데, 또 다른 기록에는 1539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거든. 아버지는 용천 부사를 지낸 허론이고, 어머니 영광 김씨는 첩이었대. 첩의 아들로 태어난 허준은 당연히 서자였겠지. 허준이 문관이나 무관이 되지 않고 의원이 된 것도 서자였기 때문일 거야. 당시 서자는 대과를 볼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일찍부터 의술을 익혔던 것 같아. 허준이 에 등장하는 건 1575년이야. 30세
다급할 땐 똥물과 장기알도 특효약이 된다임진년에 시작해 7년간 이어진 전쟁 중에 훗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의학서 이 탄생했어. 이 책을 펴낸 구암 허준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사로 존경받아. 하지만 그의 생애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뛰어난 의술을 펼친 몇몇 이야기만 전해.허준은 젊은 시절에 혜민서에서 백성들을 치료하는 일을 했어. 혜민서는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관아야. 그런 어느 날 이름난 재상집에서 부랴부랴 허준을 찾았어. “다급한 환자가 생겼으니 속히 와서 봐 주시오.”허준이
돌격대장 나가신다!상주의 용화동 전투는 정기룡의 용맹과 작전 능력을 잘 보여 준 일화야. 경상도를 무너뜨린 일본군은 상주에 진을 치고 있었어. 전투에 진 상주 목사 김해는 상주 서쪽 용화동에 숨어 있었거든. 그걸 알아낸 일본군이 용화동을 습격했어. 본대가 무너져 소속이 없어진 정기룡은 의병과 패잔병들을 모았어. 그때 마침 일본군이 용화동을 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거야. 정기룡은 임시 상주 판관이 되어 그곳으로 급히 달려갔어. 가서 보니 일본군이 이미 용화동을 점령해 버렸지 뭐야.“여기서 싸움을 벌였다가는 우리 백성들과 마을이 큰일
용울음을 우는 소년나른한 봄날, 난데없는 괴상한 소리가 진주 관아에 울려 퍼졌어.“멀쩡한 하늘에 웬 천둥소리냐?”병마사가 이방을 쳐다보며 물었어.“아마 무수 놈이 답답하여 기지개라도 켜는 모양입니다.”이방의 말에 병마사는 정색을 하고 다그쳤어.“천지를 진동하는 이 소리가 기지개 켜는 소리라니, 무수가 대체 어떤 놈이냐?”“새로 들어온 통인인데 힘이 좋고 빠르기도 하여 심부름을 곧잘 합니다요.”“이리 데리고 오너라.”이방이 댕기 머리 소년을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렸어.“너는 어찌 한낮에 괴성을 질러 관아를 소란하게 하느냐?”소년 무수
사임당은 39세에 일곱째인 막내 이우를 낳았어. 그 후로 기력이 떨어진 사임당은 자주 병석에서 지냈어. 그때마다 더욱 그리운 건 고향과 어머니였어. 고향 강릉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는 오늘날까지 애송된단다.산 첩첩 내 고향은 천 리나 되건만자나 깨나 꿈속에라도 돌아가고파한송정 가에 외로이 뜬 달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모래톱 갈매기는 흩어졌다 모이고파도 머리 고깃배는 오고 가는데언제나 고향 길 다시 밟아 가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까1550년, 이원수는 수운판관 벼슬을 받았어. 종5품의 중급 관료인데, 지방으로 돌아다
그림 그리는 강릉 소녀강릉 오죽헌. 외출에서 돌아온 집주인 이사온은 딸과 외손녀 인선을 불렀어.“우리 인선이가 보면 좋아할 만한 것을 어렵게 구해 왔다. 무엇이겠느냐?”가만히 생각을 곱씹던 인선의 대답이 톡 튀어나왔어.“안견 선생님 그림!”이사온은 웃으며 감추었던 길쭉한 통을 건네주었어. 인선은 두루마리 통을 열고 속에 든 것을 꺼내 마루에 펼치고는 환호성을 터뜨렸어. “와! 최고예요!”안견의 산수도 한 폭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드러났어. 조선 제일의 화가라는 안견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손녀를 위해 외할아버지가 멀리까지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만들기지구엔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널리 사용하는 문자는 몇 가지 안 돼. 알파벳을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지만,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글이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해.세종은 어쩌다가 이런 기발한 문자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아쉽게도 그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어. 왜냐하면, 세종은 문자 만드는 일을 철저히 비밀로 했거든. 왕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도 전혀 몰랐으니까.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왕이 발표하고 나서야 에 짧게 기록했을 정도야.오늘날 자료를 통
세종, 조선의 황금시대를 열다세종은 아버지 태종 덕분에 안정된 기반에서 나랏일을 할 수 있었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은 세종이 나랏일에 익숙해지도록 4년 동안 뒷받침을 해 주다가 숨을 거두었거든.세종의 정치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민 정신에서 출발해. 세종은 언제나 백성들과 관련된 일은 자세히 조사하고 의견을 충분히 물은 다음 백성에게 이로운 결론을 내리곤 했어. 그 당시에도 철저한 여론 조사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기까지 했으니 매우 민주적이었지.무엇보다도 세종은 백성들이 밥을 굶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싶었어. 논밭을
충녕 대군, 형들의 양보로 왕이 되다 역사란 우연 같지만 지나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 태종은 참 무자비한 권력자 같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였고, 이복동생과 조선의 설계자인 정도전을 죽였잖아. 그리고 왕이 되었거든. 매우 잔인한 것 같지만, 태종은 왕권을 강하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겠다는 철학과 소신이 있었던 거야. 어느 나라든지 건국 초기엔 그런 권력 다툼이 많았거든. 만일 태종이 그렇게 왕권을 다져 놓지 않았다면 과연 세종이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었을까? 또 세종이 왕이 되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한글
참으로 으뜸가는 공신이었다조선의 주요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새 나라의 토대를 다져 가던 정도전에게 위기가 찾아왔어. 명나라가 표전문을 트집 잡아 정도전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나선 거야.표전문이란 중국 황실에 올리는 외교적인 글이야. 거기에 명나라를 깔보는 듯한 글귀가 있다며 글을 지은 사람들을 보내라는 거야. 겉으로는 그랬지만 실은 주원장과 정도전의 오랜 갈등이 원인이었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처음부터 정도전을 몹시 미워했어. 아니 미워한다기보다는 두려워했는지도 몰라. 정도전은 틈만 나면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군사들
우리 뜻을 같이합시다 1392년에 고려의 장수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어. 조선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 그런데 사실 조선이란 나라를 계획하고 실천한 혁명가는 정도전이었어. 정도전은 1342년에 충청도 단양에서 태어났어. 그의 본관은 봉화이며 아버지는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이야. 정도전의 어린 시절은 잘 알려지지 않았어. 아버지 정운경은 청백리였지만 큰 벼슬은 하지 못했고 집안은 가난했대. 머리가 좋았던 정도전은 성균관 시험에 붙어 정몽주와 더불어 이색에게 학문을 배웠어. 두
천재 소년, 왕의 스승이 되다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고려는 치욕스런 시절을 보냈어. 고려의 왕이 될 세자는 볼모로 원나라에 가야 했지. 그러다가 원나라 공주와 혼인한 다음 왕으로 책봉되어 고려로 돌아오는 거야. 게다가 제25대 충렬왕 때부터 고려 왕들은 이름에 반드시 ‘충’ 자를 붙여야 했어. 원나라에 충성을 다하라는 뜻이었지.이제현은 그런 시대인 1287년에 태어났어. 나라 사정이 어려운 데 비해 이제현의 가정 환경은 아주 좋은 편이었어. 그의 조상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었고, 아버지 이진은 재상급 벼슬인 검교시중이었거든. 이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