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낸단다. 대학교에서 곤충을 연구할 때, 곤충 채집을 나가면 비가 와도 반드시 곤충을 찾아냈지. 그래서 교수님이 나한테 나비를 연구하라고 하셨나 봐. 나는 우리 농업을 발전시켜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생각이었는데 나비라니, 처음엔 좀 우스웠어. 하지만 우리 땅의 나비를 내 손으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뒤로 나는 11년 동안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해 연구했어. 그러면서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 나비를 잘못 분류했다는 걸 알아냈지. 나는 제대로 된 나비 분류 방법을 새로 만들고
상상력으로 꿈을 펼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관에 처음 갔을 때 어떤 기분이었니? 나는 영화관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어. 기차가 부서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 준 그 영화는 내 머릿속에 콕 박히고 말았지.나는 혼자 상상하던 세상을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곧장 행동으로 옮겼지. 아빠 카메라를 빌려 가족들을 찍기 시작한 거야. 동네 아이들을 모아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영화도 만들었어. 그리고 그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바로 영화감독이 되는 거야. 나는 짧은 영
정직하게 번 돈을 사회로! 기업가- 유일한나는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어. 아버지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까 봐 미국으로 보내신 거야.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돌아와 큰 인물이 되길 바라셨어. 하지만 그 무렵 일본에 우리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지. 나는 나라를 도우려고 미국에서 회사를 차렸어. 회사는 잘되었고 돈도 꽤 벌었지. 나는 그 돈을 밑천 삼아 한국에 돌아와 제약 회사를 차렸고, 내 이름을 따서 유한양행이라고 했단다. 유한양행은 외국에서 좋은 약을 들여와 팔았어.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변변한 약 하
달에 첫발을 내디딘 우주 비행사 - 닐 암스트롱나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무척 좋아했어. 당연히 내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지. 결국 열여섯 살 생일 때,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단다. 그 뒤로 대학교에서는 항공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전쟁에 비행사로 참전하기도 했어.나는 하늘에서 마음껏 내 꿈을 펼쳤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먼 곳,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신비로운 세상! 바로 우주에 가고 싶었어. 그래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 비행사가 되었지. 우주 비행사 훈련은 무척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모든 훈련을 마
불가능이 없는 프랑스 황제 - 나폴레옹나는 열다섯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열 달 만에 장교 시험에 붙었단다. 그러던 중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어.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이 힘을 모아, 못된 왕과 귀족들을 몰아낸 혁명이지. 나는 시민들을 도와 싸웠어. 다행히 시민들이 이겼고, 나는 군대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단다. 그 뒤, 나는 프랑스를 넘보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싸워 크게 이겼어. “우리는 프랑스의 자유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싸웁시다!”병사들은 내 말에 자신감을 얻어 오스트리아를
진화론을 정립한 생물학자 - 다윈내가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어. 특히 갈라파고스 핀치 새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다가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알아냈지. 어떤 새는 부리가 살짝 구부러져 있고, 어떤 새는 곧지만 짧고, 또 어떤 새는 다른 새에 비해 단단하고……. 같은 핀치 새인데도 사는 곳이나 먹이에 따라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야!나는 탐험에서 돌아와 더 깊이 연구했어. 그리고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변한다는 진화론을 내놓았지. 처음에는 동식물의 가짓수가 적었지만, 진화하면서 점점
인종 차별법을 없앤 흑인 대통령 - 만델라내가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사는 나라야. 그렇지만 백인들은 흑인을 차별하는 법을 만들고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정책으로 흑인을 못살게 굴었어.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흑인의 권리를 찾는 운동에 뛰어들었어. 사람들을 모아 거리에서 “인종 차별법을 없애라!” 하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지. 백인 정부는 시위를 이끈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눈이 벌겠지. 나는 경찰에게 붙잡혀 27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단다. 그래도 인종 차별법을 반대하는 운동은 계속되었고, 나를 석방하려는 운동도 활
일생을 청렴하게 산 정승 - 황희나는 스물여섯에 벼슬길에 올라 60여 년 동안 벼슬을 하며 나랏일을 했단다. 조선을 세운 태종을 도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백성에게 이로운 여러 정책을 만들었지. 태종은 나를 신뢰했지만, 태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해서 귀양을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세종이 왕에 오르자 다시 나를 불렀어. 내가 나라를 위해 쓸모 있다고 생각한 거야. 나는 세종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지. 우리가 넓힌 북쪽 땅을 잘 정비해서 오랑캐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농사법을 더 좋게 고치기도 했단다. 내가 오랫동안
를 그린 조선의 풍속화가 - 신윤복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익숙했어. 우리 집안에 화가가 많았거든. 우리 아버지는 도화서에서 일하는 뛰어난 화가였어. 도화서는 나라에서 필요한 그림을 맡아 그리던 곳으로 그림 솜씨가 아주 빼어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지.나도 도화서에서 나라 행사 때 쓰이는 그림들을 그렸어. 그렇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었어. 바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는 거야.나는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옮겼어. 또 사람들이 잘 드러내지 않
인과 예를 가르친 유교 창시자 ‘공자’나는 유교를 창시한 사람으로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야. 유교는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서 깨우친 사상이야. 비록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단다.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어. 창고를 관리하는 나랏일을 맡았을 때는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했지.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공부해서 서른이 넘어서는 먼 나라까지 이름을 떨쳤어. 내게 학문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수없이 몰려와 평생 가르친 제자가 3천 명이 넘는단다. 나는 지혜, 용기, 덕을 갖춘 군자를
안녕? 나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야. 나는 처음에 화랑*에서 일했어. 화랑에서는 아름다운 그림을 종일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욱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화랑을 그만두고 탄광에 들어가 가난한 광부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 이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렸어. 서툰 솜씨였지만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했지.동생 테오는 책과 물감을 보내 주며 늘 힘을 북돋워 주었어.“형, 그림 공부를 해 보세요. 난 형이 훌륭한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테오를 생각해서라도
오랜 옛날, 낙동강 동쪽에 있는 나라 진한의 여섯 마을 사람들은 내가 열세 살이 되자 나를 왕으로 떠받들었어. 사람들은 내가 알에서 태어났다며, 하늘이 보낸 특별한 사람으로 여겼거든. 나는 왕에 오르면서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직접 농사를 가르쳤단다.“우리 땅은 기름져서 농사를 짓는다면 겨울에도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도록 잘 보살폈단다. 나라 형편이 좋아지자 나는 금성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지었어. 이제 제법 나라 꼴을 갖추게 된 거야
봄을 알리는 노란 봄꽃, 개나리“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개나리를 보면 이라는 동요를 절로 흥얼거리게 돼요. 개나리는 진달래, 민들레와 함께 봄이 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꽃이에요. 가지마다 노란 꽃이 활짝 피어나면 집 담장, 학교 울타리는 물론, 오가는 길목마다 온통 노란 개나리꽃밭으로 변하죠. 마치 종처럼 생긴 꽃송이에서 금방이라도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아서, 서양에서는 ‘골든벨(Golden bell)’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개나리는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꽃으로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푸르른 으뜸 나무, 소나무언제나 푸른 소나무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령도에서 울릉도까지 자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랍니다.‘소나무’라는 이름은 ‘나무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뜻이에요. ‘으뜸’이라는 뜻의 ‘수리’가 ‘솔’로 변해 ‘나무’와 합쳐지면서 소나무가 되었거든요.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주로 궁궐과 사찰을 짓는 목재로 사용했어요. 또 흉년이 들었을 때는 속껍질인 송기를 벗겨 죽을 쑤어 먹었지요. 솔잎은 송편을 찔 때 넣고, 소나무의 꽃가루인 송화 가루로는 우리나라 전통
흰 솜털이 터지는 나무 꽃, 목화식물은 보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주고 약재로도 쓰이는 등 생활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참 고마운 존재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입을 거리까지 주는 식물이 있어요. 바로 목화가 그렇답니다.목화는 한해살이풀로, 꽃이 무궁화와 비슷하게 생겼어요. 꽃이 피고서 하루 만에 시든다는 것도 무궁화와 닮았지요. 보통 8~9월에 꽃이 피고 지며 10월이 되면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를 ‘다래’라고 해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배고픔을 달래려고 따서 먹기도 했어요. 다래가 익어서 터지면 씨
매운맛을 내는 열매채소 , 고추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매운 고추! 고추가 매운 이유는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에요. 캡사이신은 고추의 껍질과 씨앗 등에 들어 있는데, 특히 씨앗이 붙어 있는 흰 부분에 가장 많이 들어 있어요. 고추는 다른 동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널리 널리 번식하려고 캡사이신을 만들어 내는 거랍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고추를 즐겨 먹었어요. 익지 않아서 푸른빛을 띠는 풋고추는 된장에 찍어 날로 먹거나 튀겨서 부각으로 먹고, 꽈리고추는 작고 매운맛이 덜해 조려서 먹어요.
김치 담글 때 쓰이는 채소, 배추서양에 양배추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배추가 있어요. 배추는 잎줄기를 먹기 위해 심어 기르는 채소예요. 배추나 무에서 돋은 꽃줄기를 ‘장다리’라고 해요. 이 장다리에서 꽃이 피면 잎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배추는 보통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먹지요. 배춧잎을 갉아먹고 사는 배추벌레도 있어요. 배추흰나비의 애벌레지요. 시간이 지나면 예쁜 배추흰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지만, 애벌레일 때는 배춧잎을 갉아먹는 해충이랍니다. 배추는 날것으로 먹기도 하지만 주로 김치를 담가 먹어요. 겨우내 먹기 위해 김치를
바람 타고 나는 솜털 씨앗, 민들레민들레를 후~ 불어서 씨앗을 날려 본 적 있나요? 민들레 씨앗에는 하얀 솜털이 달려 있어서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어요. 이렇게 씨앗을 퍼뜨리는 꽃을 ‘풍매화?라고 하지요. 그러다가 땅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싹이 나고, 꽃을 피우기까지 일주일도 채 안 걸려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곳곳에서 쉽게 민들레를 볼 수 있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가 보는 민들레는 대부분 서양 민들레예요. 서양민들레는 우리 토박이 민들레보다 키가 크고, 꽃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어요. 민들레 잎은 땅에 붙어
날마다 피고 지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어때요? 에 ‘무궁화’가 나오지요?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거든요. 무궁화는 7월부터 10월까지 계속 피었다 지기를 반복해요. 한자로 ‘끝이 없이 피는 꽃(無 없을 무, 窮 다할 궁, 花 꽃 화)’이라는 뜻이지요. 끈질기고 생명력 강한 우리 민족과 많이 닮았다고 해서 조상 대대로 무궁화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궁화는 귀한 일을 나타내는 꽃으로 쓰였어요.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쓰던 *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