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입니다. 1880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 왕립 드로잉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1883년 크리스티아니아 국전에 입상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뭉크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으며 어머니와 누나의 잇따른 죽음과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불안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우울하거나 불안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은데, 그림을 통해 슬픔ㆍ불안ㆍ외로움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를 비롯하여 , 같은 대표작을 남겼습니
루소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활동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일찍부터 직장에 다니며 가족을 돌보아야 했기에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을 받지 못했고 40살이 넘어서야 화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색채나 원근법 같은 그림기법에 능숙하지 못해 미술계에서 무시당했지만 피카소, 칸딘스키, 들로네 같은 젊은 예술가들은 그의 독창적인 그림을 높이 평가해 주었어요. 이후 1910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이라는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같은 해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살
페르메이르는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화가입니다. 네덜란드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문화생활이 풍성하던 시대에 살았던 페이메르는 서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에는 특히 빛의 효과와 조화로운 색의 대비를 사용하여 실내에 있는 사람의 평범한 생활을 그린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 , , 등이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부르는
미켈란젤로, 터너, 루소, 뭉크…. 천재적인 화가들이 일생을 바쳐 만들어낸 미술 작품을 ‘명화’라고 해요. 이 명화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으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전해줍니다. 여러분도 명화를 그린 화가들처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창조해보고 싶지 않나요? 이 코너를 통해 미술을 잘 하는 방법을 익히기 바랍니다.자, 그럼 지금부터 명화 친구들을 만나러 함께 출발해 볼까요? Let’s go to the museum art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어머니가 돌아
일제의 탄압이 점점 극심해졌던 1938년, 안익태는 자유로이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어요. 미국 유학 중 어느 날, 안익태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한인 교회에 갔다가 애국가를 부르는 한국인 신도들을 보았어요. 이국 땅에서 듣는 애국가는 안익태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일제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애국가가 없었어요.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랭 사인」을 가사만 바꿔 애국가로 부르고 있었지요. 안익태는 외국의 민요가 애국가로 불려지는 것이 못마땅했어요.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하는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이 작품이 너무나 독창적이었던 거예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리듬, 전통 음악을 무시한 표현 방법. 그것은 전통의 고전 음악을 뒤흔드는 음악의 혁명과도 같았어요.「정화된 밤」은 바로 12음 기법을 사용해서 작곡한 곡이었어요. 이 곡은 반음계의 갑작스러운 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또 두 남녀의 사랑과 격렬한 감정이 음악 전체에 스며들어 있어요. 이 곡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첫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부분은 서정시풍인데 차가운 달밤에 함께 호숫가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는 1900년경 일본의 나가사키예요. 미국의 해군 중위 핀커톤은 기생인 나비부인 쵸쵸상과 결혼하기로 하고 언덕 위에 집을 얻었어요. 나가사키 주재의 미국 영사인 셔플레스가 결혼을 말렸지만 핀커톤은 듣지 않았어요. 장미가 활짝 핀 정원에서 결혼식은 진행되고, 핀커톤과 나비부인의 감미로운 2중창이 흐르며 막이 내려져요. 그로부터 3년 후, 나비부인을 두고 미국으로 돌아간 핀커톤은 소식이 없어요. 하녀 스즈키를 데리고 나비부인은 어린 아이와 쓸쓸히 살고 있었어요. 나비부인은 핀커톤이 다시 돌아올 날만을 꿈꾸며 하
러시아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불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스트라빈스키는 불새를 주제로 한 발레 음악을 작곡했어요.어느 날 밤, 사냥을 나왔다 길을 잃어버린 왕자가 마법에 걸린 정원에 들어갔어요. 왕자는 그 곳에서 황금빛 찬란한 불새를 사로잡았어요. 불새는 마법의 깃털 하나를 주면서 자기를 놓아 달라고 애원했어요. 왕자는 불새를 놓아 주었어요.불새가 날아간 후, 왕자는 어느 공주가 시녀들과 러시아 민요에 맞춰 춤을 추며 뛰어노는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어요. 공주는 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수많은 작곡가들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단연 명작이에요. 1899년부터 1900년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시적이고 정서가 풍부한 곡이에요.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하기까지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어요. 라흐마니노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교향곡 제1번 작품 13」을 발표했을 때였어요. “라흐마니노프가 연습용 교향곡을 만들었다지? 언제까지 연습용 곡만 쓸 건가?”음악 평론가들은 이렇게 빈정거렸어요. “정성을 다해 만든 곡을 한낱 연습용 곡으로 치부하다니…….”라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음악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어요. 파격적인 음악 형식과 기상천외한 기법 등 온갖 종류의 음악 실험이 벌어졌어요. 피아노 대신 신시사이저라고 부르는 건반 악기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팝 음악과 고전 음악의 접목을 시도하는 음악가도 나왔어요. 조지 거슈인 역시 새로운 음악으로 고전 음악계에 도전장을 냈는데, 그 곡이 바로 「랩소디 인 블루」였어요. 「랩소디 인 블루」는 ‘근대 음악의 실험’이라는 이름의 이벤트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어요.“팝 음악 작곡가가 만든 곡이라는데, 뭐 별 수 있겠어?”이 날 연주회장
오페라의 전체 이야기를 압축해서 담고 있는 것이 서곡이에요. 탄호이저는 영혼과 육체의 싸움을 노래하고 있는데 승리의 합창은 영혼의 세계를, 동굴 음악은 육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영혼이 승리한다는 내용이에요.제1막 기사 탄호이저가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와 육체적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이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성모 마리아에게 호소하자, 그는 양치기 처녀가 노래하는 골짜기로 보내졌어요. 그때, 로마로 순례를 떠나는 영주인 헤르만과 친구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어요. 그들은 탄호이저에게 동지가 되어
제1막 비올레타의 집에서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고 있어요. 비올레타는 사교계의 유명한 무희예요. 귀족 청년 알프레도는 아름다운 비올레타에게 첫눈에 반했어요. 알프레도가 돌아갈 때, 비올레타는 자기 가슴에 꽂았던 동백꽃을 주며 꽃이 시들면 다시 오라고 속삭였어요. 손님이 다 돌아간 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그리워하며 ‘아! 꿈에 그리는 그대`’라는 아리아를 불러요.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결핵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제2막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리스트는 헝가리의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곳은 집시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흥겨운 곳이었어요. 리스트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배울 수 있었어요. 12세 때 헝가리를 떠났던 리스트가 고국에 일시 귀국한 것은 28세 때였어요. 유명 음악가로 성공해서 돌아온 리스트를 모든 사람들은 크게 환영했어요. 헝가리에 머무는 동안 헝가리의 민요와 집시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어요. 그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헝가리인의
‘이 강을 건너면 세상이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기원전 49년 1월의 어느 새벽녘,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자 갈리아 속주(이탈리아 반도 밖에 있던 로마의 영토) 총독이던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카이사르가 명령을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지난 밤 어둠 속에서 30킬로미터를 달려오지 않았던가.이 강을 건너면 그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루비콘 강은 로
“아, 답답해! 무조건 단조, 장조에 맞춰 음악을 만들라니……. 이건 줄 똑바로 서라고 소리치는 선생님이나 다름 없어!”드뷔시는 기존의 음악 형식이 자신의 생각을 가두는 네모 상자 같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 형식 때문에 화성이 발전하지 못한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 맞아. 화성이란 그림의 색깔과 같은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낀 대로만 화성을 쓸 거야.”그는 더 이상 모범생 같은 음악은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가슴과 두 귀에다
김구1876~1949년“안 됩니다, 선생님! 이렇게 가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김구의 거처로 찾아온 청년들의 목소리는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남쪽이든 북쪽이든, 선생님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제발 북으로 가지 마십시오, 선생님!”평생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 온 김구가 남북의 분단을 막기 위해 북쪽의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러 북으로 가겠다고 하자, 그를 따르는 청년들이 이를 말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청년들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놓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구 혼자서 북으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이순신(1545~1598년) “왜적의 배를 어떻게 그토록 쉽게 놓아줄 수가 있소! 그 때문에 싸움이 얼마나 불리해질지 모르셨소!”명나라의 수군 사령관 진린이 왜군의 배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순신은 크게 노했다. 임진왜란 말(1598),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육지와 바다에서 협동 공격을 하여 왜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는데 왜군 진영에서 배 한 척이 유유히 빠져나간 것이다.진린은 겨우 한 척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빠져나간 그 배가 다름 아닌 통신선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은 틀림없이 왜교(왜군
13세기 무렵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 아래 있었어요. 그러다 1808년에 다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어요. 역사적으로 볼 때 핀란드는 참으로 불행한 나라였지요. 시벨리우스는 나라 잃은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애국심을 높이기 위해 음악을 작곡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곡이 바로 「핀란디아」예요. 「핀란디아」는 웅장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곡이에요. 핀란드 정부는 이 곡을 국민 찬가로 추천했고, 국민들은 열광적으로 이 곡을 사랑했어요.곡이 시작되면, 지난 날 핀란드의 빛나는 역사를 설명하듯 힘찬 두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가 쓴 5막짜리 희극이에요. 멘델스존은 이 유쾌한 희극에 곡을 붙였어요. 영주의 딸 하미아는 데미트리우스와의 결혼을 강요당하자, 사랑하는 라이산더와 함께 숲속으로 도망을 쳤어요. 그러자 데미트리우스는 하미아를 쫓아서 숲속으로 들어갔고, 데미트리우스를 짝사랑하는 헬레나도 그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어요. 한편, 이 숲에서는 요정의 왕 오베른과 아내 티타니아가 부부 싸움을 한 뒤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였어요. 오베른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요정 퍼크에게 마법의 풀즙을 구해 오게 했어요. 이 풀즙은 눈에 바르면
“너 자신을 알라”,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어린이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명언들이다. 짧고 명쾌한 문장으로 압축적인 뜻을 전달하는 이 명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한 것일까? 그리고 왜 그 말을 하게 됐을까? 명언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위인들의 삶과 역사적인 사건을 만나보자.우리가 조금씩, 매일, 함께 노력한다면 지구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습니다.If we all do our bit, every day, we can, together, make the world